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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목길

Work Text:

불타오르는 집을 등지고 허건오는 놈들을 쫓아 골목길를 달렸다. 불 같은 건 소방서든 뭐든 알아서 해줄 것이다. 지금은 저 도복 패거리를 잡는 게 먼저였다.
갈림길이 많은 좁은 골목이라 도망치는 쪽이 유리했다. 앞서가는 놈들도 그렇게 생각했는지 갈림길에서 셋이 한꺼번에 흩어졌다.
“우리도 흩어집시다!”
“뭐 뻔한 소릴 하고 그래?”
하태성과 김주황의 목소리를 귓등으로 흘리며 허건오는 누가 어느 방향으로 사라지는지 눈으로 쫓았다.
“내가 이쪽!”
그가 소리치며 흥신소장이 간 쪽으로 달렸다.
“내가 도복 맡으마!”
“그럼 제가 자동으로 기자입니까..”
동료들을 뒤로 하고 허건오는 달렸다. 흥신소장 그놈만은 꼭 자기가 잡고 싶었다. 잡아서 본때를 보여주고 싶었다.
처음 만난 날의 굴욕을 되갚아주고 싶었다.
“젠장, 비리비리하게 생긴 주제에.....”
한번 콱 그어주면 꼼짝도 못할 것 같은 놈이 방긋방긋 환하게 웃으며 사람을 놀려먹었다. 용서할 수 없었다.
‘잡으면 안 죽을 만큼 찔러 버릴까.’
그 놈이 발발 떨며 살려달라고 우는 모양을 상상하니 참을 수 없이 유쾌해졌다. 꼭 그렇게 해주고야 말겠다고 결심하며 건오는 베이지색 코트를 따라 달렸다.
얼마 달리지 않아 거리가 가까워졌다. 곧게 달리지 못하고 비틀거리는 게 어디 아픈 것 같았다. 허건오는 속력을 올려 뒤에서 그를 덮쳤다.
“잡았다!”
“헉!”
배준혁이 길바닥에 쓰러졌다. 허건오는 재빨리 그를 타고 올라앉아 누른 뒤 목에 칼을 가져다댔다.
“자, 죽고 싶지 않으면 얌전히 하라고.”
몸을 가까이 붙이자 헐떡대는 숨소리가 들렸다. 만족스러웠다. 그 소리에 고통이 섞이게 하고 싶어 머리카락을 그러쥐고 잡아당겼다.
“윽....”
“이렇게 되니까 기분이 어때?”
건오가 그에게 속삭이듯 말했다.
“그 때 깝치지 말 걸 그랬다는 후회가 막 들지 않아?”
그가 칼날을 준혁의 목에 좀 더 바짝 갖다 댔다.
“내가 손만 까딱하면 댁은 금방 시체 상태라고, 응?”
그러나 웃으면서도 건오는 뭔가 이상한 점을 느꼈다. 다른 사람 목에 칼을 들이대 본 경험은 이전에도 많았다. 그때와는 느낌이 달랐다. 보통은 목에 칼이 들어오면 바짝 굳어서 고개를 뒤로 빼려고 발버둥 쳤다. 이렇게 침착할 정도로 가만히 있는 사람은 매우 드물었다.
피식하고 비웃는 소리가 들렸다.
“죽인다고요? 이 주택가 골목길에서?”
허건오는 기겁해서 칼을 치우고 손에 쥔 머리끄덩이를 뒤로 채었다. 생각 이전에 반사적인 행동이었다. 하고는 후회했지만, 그래도 덕분에 길바닥에 피가 흩뿌려지는 사태는 막을 수 있었다.
“이, 이 미친 새끼가!”
배준혁은 칼에 목을 들이대던 기세 그대로 땅을 짚고 몸을 옆으로 굴렸다. 허건오는 허둥지둥 그를 꽉 붙들었다. 준혁이 그에게서 벗어나려고 몸부림쳤다. 뒤로 팔을 뻗어 건오의 목을 쥐었다. 발길질로 그를 떨어버리려고도 했다.
반쯤 패닉에 빠져 건오는 그러쥔 머리카락을 더욱 꽉 쥐고 흔들었다. 바닥에 갖다 박았다. 칼도 버리고 양 손으로 그의 머리를 쥐고 길바닥에 짓찧었다. 세 번쯤 박고 나니 준혁의 움직임에서 힘이 빠졌다. 방심하지 않고 준혁이 완전히 축 늘어질 때 까지 건오는 몇 번이고 그의 머리를 바닥에 갖다 박았다. 마침내 준혁이 움직임을 멈추자 건오는 그의 머리를 놓을 엄두도 내지 못하고 씩씩거렸다.
“제기랄... 뭐, 이런. 미친 놈이.....”
그가 조심스럽게 한 손만 떼어 자기 목을 만졌다. 자기 것보다 큰 손이 쥐고 눌렀던 데가 뻐근했다. 미리 상대의 머리카락을 움켜쥐고 있었던 게 천만다행이었다. 아니었다면 아마 간발의 차로 지금 바닥에 뻗어있는 건 허건오 쪽이었을 것이다.
“이 미친 새끼가.”
건오는 숨이 막혔다. 여기서 이놈을 정말 죽였다간 자기가 곤란해지는 건 분명 맞지만 그걸 안다고 해도 단지 상대의 허를 찌르기 위해 자기 목을 칼날 쪽으로 들이 미는 건 대체 뭐라는 미친놈인가.
위험한 상대를 잘못 건드린 건 자기 쪽일지도 모른다는 무서운 생각을 하지 않으려고 애쓰며 허건오는 이제 어쩌나 했다. 이걸 끌고 가지니 힘이 부치고 깨우자니 다시 누를 자신이 없었다.
“으....”
고민을 덜어주려는 듯 준혁이 몸을 움찔거렸다. 허건오는 허둥지둥 그의 몸 위에 올라타 양 손을 뒤로 꺾어 잡고 체중으로 내리눌렀다.
“쓸데없는 짓 하지 마.”
건오가 준혁의 귀에 대고 을렀다.
“여기서 죽이는 건 곤란해도 어디 힘줄을 끊어놓거나 아니면 그 예쁜 얼굴에 크게 상처를 내 줄 수도 있어.”
“예쁘긴... 뭐가.....”
준혁이 힘겹게 내뱉었다.
“응? 몰랐어? 거울도 안 보고 살아?”
건오가 그의 뒷머리를 잡고 고개를 옆으로 돌렸다. 이마가 깨져 피가 흐르는 게 보였다. 아까 바닥에 몇 번이고 박아대느라 얼굴이 흙투성이였다.
“그러게 쓸데없는 반항 안 하면 좋았잖아.”
건오가 내뱉었다.
“얌전히 있어. 아님 눈깔을 뽑아준다.”
죽는 것 보다 눈이 뽑히는 게 무서운지 준혁은 더 이상 몸부림치지 않았다. 건오는 안도했다. 안도했다가, 이렇게 몸이 바짝 붙어있으니 자기가 안도한 걸 상대도 눈치 챘을 거라 생각했다. 얕보이면 곤란했기에 허튼 생각 하지 말라는 의미로 그가 머리카락을 더욱 꽉 움켜쥐었다. 준혁이 고통스러운 신음을 흘리고 밭은 숨을 내뱉었다.
그러고 있으려니 준혁의 목덜미가 건오의 코앞에 드러났다. 다행히 별로 아저씨 냄새가 나거나 그러지는 않았다.
그러고 보니 대장 나리라면 이렇게 다른 사람과 몸을 딱 붙이고 있는 거 질색을 했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샴푸 냄새조차 싫다고 하는 섬세한 사람이니까. 아저씨 쫓아가서 잘 잡을 수 있을지 걱정이 될 지경이었다, 지금은 그가 남 걱정할 처지는 아니지만.
‘아니 근데 왜 아무도 이쪽으로 안 오는 거야, 끌고 온 놈들 설마 다 고릴라만 쫓아간 건 아니겠지?’
그 경우 자기 혼자 이 사람을 골목 어귀까지 끌고 나가야 했다. 목에 칼을 들이대도 안 얌전해지는 이런 인간을.
‘어쩌지?’
우선 이놈 손이라도 묶고 누구 불러야겠다고 생각해서 건오가 그의 머리를 놓고 주머니로 손을 뻗었다. 싸우는 와중에 두 사람 사이에 옷자락이 끼어 주머니에 손 넣기가 쉽지 않았다. 한참 더듬거리는데 갑자기 아래 깔린 몸이 경직했다.
‘왜?’
“무슨... 짓을 하려는 겁니까.”
바짝 긴장한 목소리가 물었다.
“여긴 밖이고 주택가입니다. 어떻게...”
건오는 ‘내가 뭘?’이라고 묻고 싶었다. 하지만 포로를 잡고 있을 땐 자기가 상황 파악 못하고 있다는 티를 내서는 안 되었다.
“왜, 뭐가 어때서 그래.”
건오가 느물느물 웃었다.
“어둡고 아무도 없다고.”
그리고 그가 뒤늦게 깨달았다. 지금 자기 손이 준혁의 엉덩이에 닿아 있다는 걸. 그는 어디까지나 주머니에서 수갑과 전화기를 찾으려고 그런 거지만 한참 꿈지럭 댔으니 상대가 오해하는 것도 당연했다.
건오는 그 오해를 풀지 않았다. 그가 고개를 숙여 준혁의 귓바퀴를 이로 물었다. 준혁이 힉 하는 소리를 내며 목을 움츠렸다.
“그렇게 겁먹지 말라고, 아프게 하진 않을 테니까.”
드디어 이자의 약점을 발견했다고 생각하니 몹시 유쾌해졌다. 연상의 아저씨인 점도 상관없게 느껴졌다. 그가 슬슬 허리를 움직여 몸을 마주 비볐다. 준혁의 목덜미를 이로 물었다.
“이, 이러지 마십시오.”
준혁이 애처로운 목소리로 간청했다.
“하지 말라니까 더 하고 싶은데?”
건오가 준혁의 엉덩이를 쥐고 주물렀다. 생각보다 느낌이 나쁘지 않았다. 준혁이 울먹이며 몸부림치는 것도 유쾌했다.
처음에는 장난이었지만 이러고 있다 보니 건오는 차츰 정말로 흥분하기 시작했다. 이대로 정말 해치워버릴까 싶어 건오는 몸을 일으켜서 준혁의 옷자락을 걷으려 했다.
둘 사이에 공간이 생기자 준혁이 휙 몸을 돌리며 잡혀있던 손목을 빼냈다. 건오는 한 순간 판단이 늦었고, 몸을 반 바퀴 돌려 건오를 마주보게 된 준혁은 건오의 다리 사이에 인정사정없이 무릎차기를 먹였다.
“커........... 허”
건오는 비명도 제대로 지르지 못하고 쓰러졌다. 그를 옆으로 밀치고 준혁이 일어났다.
“처음도 아닙니다, 그딴 개수작.”
준혁이 건오의 배를 힘껏 걷어차고 머리를 밟아 땅에 처박았다. 그리고 그가 못 일어나는 것을 확인하고 등을 돌려 다시 달려 도망쳤다.
정신이 혼미하고 통증으로 바닥을 기면서도 허건오는 도망가는 준혁의 뒷모습을 노려보았다.
“가만.... 안 두겠어......”
그가 이를 악물고 내뱉었다.
“이 빚은 갚아 줄 거야. 반드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