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ctions

Work Header

퍼스트 레이디

Work Text:

“퍼스트 레이디요?”

이 나라 대통령의 외동딸이자, 어머니인 백설희씨가 세상을 떠나 안주인 노릇을 할 사람이 마땅히 없는 관계로 퍼스트 레이디 노릇까지 하고 있었던 고등학교 1학년, 원아미는, 대통령이 된 지 반 년이 된 오늘 갑자기 아버지, 원호찬 대통령이 갑자기 심각한 이야기를 꺼내자 눈이 휘둥그레지고 말았다.

“아빠 좋아하는 사람……”

“나는 정치가고, 아내와 자식이라도 필요하다면…… 이용할 지도 모르지.”

“아니, 그런 말씀을 하시면 누가 아빠한테 시집오겠어요.”

“돈과 권력과, 여기 미모도 있잖니.”

“……”

“게다가 너같은 이쁜 딸까지 공짜로 생기고.”

……참으로 정치가의 근성이라 해야 할까 싶은 대사가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튀어나오는데도, 역시 정치가의 딸인 원아미는 태연히 대꾸하였다.

“그래서 상대가 누구인데요?”

“그게 말이다.”

하지만 다 큰 딸 앞에서 결혼할 상대 이야기를 하자니, 아미 아버지도 어지간히 면구스러우셨던 모양이지. 언제나 정치가인 아버지가, 어울리지 않게 얼굴까지 붉히고 있다니. 조금은 서운하고, 조금은 신기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원호찬 대통령은 아하하, 하고 소리내어 웃다가, 아미의 손을 잡았다가 놓았다가 자리에서 일어나 어깨를 으쓱거리고는 다시 자리에 앉으며 한번 더 웃었다.

“그러니까…… 네게는 좀 뜻밖일지도 모르지만.”

“이모 아니죠?”

“……아니다.”

“그럼 누구지? 아빠랑 그렇게 가까이 지낼 만한 여자 중에 나이 맞는 사람이……”

“……”

“누군데 그러세요.”

“역시 대통령이라면, 정치, 경제, 그런 면에서 많은 정보가 필요하겠지. 그래서 말인데.”

“누군데요.”

“빅 브라더네 패밀리 중에서 한 명을……”

“서, 설마 아가사 씨인가요?”

그런 여자가 새엄마로 들어왔다가는 언어영역 110점만 받아도 죽을 거야! 아미는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오늘처럼, 루이스가 남자인 것이 다행스러웠던 적이 없었던 것 같았다. 수리탐구영역을 만점받는 것은 아마 언어영역을 다 맞는 것 보다도 두 배는 어려운 일일 테니까. 그러나 다행히도, 대통령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너도 아는 사람이고……”

“그러면, 이졸데 씨예요? 트리스탄은 어쩌고요! 그 사람들 떨어져서는 못 지낼텐…… 헤에……?”

“원아미.”

“예, 아빠?”

“여고생이 무슨 청순하지 못한 상상을 하는데 혼자 머엉 하고 있는 거냐. 대체 요즘 애들이란.”

“……그거야.”

“그렇지 않아도 제 2 비서실에서 네 방 컴퓨터 수리하려고 들고 나갔더니 온갖 이상한 것들이 들어 있어서 참 면구스러웠다던데 그 이야기는 들었냐?”

“그러시면 어떻게 해요! 절판되는 바람에?구할 수도 없어서 완전 암흑루트에서 구한 ‘비리공무원의 고백’도 같이 날아가서 죽겠는데!”

“오호라, 비리 공무원?”

“아니, 아빠가 신경 쓰실만한 것은 아니……”

그러다가 아미는, 아빠가 계속 딴전을 부리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아, 그래. 우리 아빠지만 사실 뼛속부터 정치가니까. 그냥, 언니 두 마리 달고 들어오거나 아침저녁 사과 먹고 거울만 보는 여자만 아니라도 다행이지. 차라리 그리 마음먹고 나니 속이 편안해지는 것만 같았다. 아미는 아버지, 원호찬 대통령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상대가 누구인데요.”

“……올 시간이 되었는데.”

그때였다. 문 두드리는 소리가 나자, 대통령은 반가운 듯 문 쪽을 돌아보았다.

“들어오지.”

그리고 아미는, 자신의 동급생 화련의 무삭제 성인버전…… 이 아니라 20대 후반 성인 여성의 모습을 한 파렌하이트를 보고 소스라치게 놀라고 말았다.

“파, 파렌하이트…..?!”

자러 들어갔지만, 잠은 오지 않았다.

어떤 모습을 하고 있어도, 그 눈동자만은 그대로야. 어쩐지 쓸쓸하고 무정해 보이는, 그 유리알같은 눈동자. 화련이의 눈을 하고 있을 때에도, 파렌하이트의 모습으로 있을 때에도 언제나 허전한 잿빛이 도는.

목이 말랐다.

“……미스트리스?”

아빠와 결혼할지도 모른다고.

그랬는데도 파렌하이트는 여전히 그녀의 방문 앞을 지키고 있었다. 마치 충실한 사냥개처럼.

“파렌하이트, 안 자고 뭐 해요.”

“……”

“아빠랑 결혼, 할 거예요?”

“예……”

“아빠를 좋아해요?”

“……”

“잠깐만, 그런데 대통령이 호모라고 소문이 나면 이 나라는 어떻게 되는 거죠?”

“왜 대통령께서 호모라는 소문이 나죠?”

“그건……”

“미스트리스, 저는 이미 결혼한 적도 있는 사람입니다.”

“여자라는 증거는 없잖아요.”

“……”

“하긴, 남자라는 증거도 없기는 없지만.”

“그게 중요합니까?”

“예?”

“남자니…… 여자니 하는 것이.”

“중요…… 는 하죠, 아빠는 대통령이니까.”

아미는 쪼그리고 앉았다. 달빛에, 색소가 옅은 파렌의 머리카락이 은빛으로 빛났다.

“결혼한 뒤에도, 저는 이 모습으로 미스트리스를 지킬 겁니다. 원하신다면.”

“파렌하이트.”

“대신 낮에는, 영부인으로서의 모습을 보여야 할 때에는, 그 때는 어쩔 수 없겠군요. 제가 가장 잘 아는 모델이라는 분이.”

“……엄마, 인가요.”

“예.”

“……”

“그 조건으로, 결혼을 요구했습니다.”

“파렌하이트가요?”

“예.”

파렌하이트는 고개를 끄덕였다. 기가 막혔다. 그러나 파렌하이트는 차가운 바닥 위로 손을 내밀어, 아미의 손을 붙잡으며 중얼거렸다.

“당신을 지키기 위해서……”

“뭐라…… 고요?”

“당신을 지키기 위해서, 계속 곁에 있으려면…… 그 방법 밖에는 없을 것 같아서.”

이건 내 마음이 아니야. 이건 이 녀석의 껍데기가 만들어 낸 환상일 뿐. 눈을 감고, 다시 스노우 화이트의 모습을 쓰면, 그때는 저 원호찬에게 기꺼이 미소지을 수 있을 테지. 복잡한 마음을 끌어안은 채 파렌하이트는 아미의 눈을 바라보았다.

“차라리 여자인 편이, 견디기 쉬울 것 같아서……”